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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4월 16일 19시 21분]
 
당사 정지홍 대표의 엔저에 관한 Economist 지 기고입니다. 

2013.04.22 1184호 [24] 인쇄하기
 
정부는 고환율 집착 버리고 기업은 내수 살리는 기회로
정부·기업 대응 방안은
정지홍 RHT 대표

 


엔저의 공세가 거센 이때 정부는 어떤 정책을 펼쳐야 할까. 무엇보다 환율의 변동성 관리에 최우선 역점을 두고 특정 수준의 환율을 유지하려는 유혹을 경계해야 한다. 양적 완화 정책은 재정 건전성, 인플레이션, 자본 이탈 가능성 등 많은 걸 포기하거나 위험을 감수한 극약처방과 같은 조치다. 

일본이 매달 7조5000억엔(약 86조)의 돈을 풀어 엔저 공세를 퍼붓는데, 올해 1년 예산이 342조원인 우리나라가 돈을 풀어 이에 맞설 수 있을까. 절대 가능하지 않다. 미·일 양적 완화의 영향력이 압도적인 현재 상황에서 고환율 기조는 더 이상 한국이 선택할 수 있는 카드가 아니다. 미국과 일본이 양적 완화 조치를 거두지 않는 한 예전의 고환율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어설픈 시장 개입 화 부를 수도


 
그렇다면 미국과 일본의 양적 완화가 언제 끝날지 유추해보자. 일본의 양적 완화가 적어도 2년간 계속될 것이라고 공표된 지 한 달도 안됐으므로 당분간 완화조치가 종료될 가능성은 없는 만큼 미국의 양적 완화 조기 종료 시점이 언제일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미국의 양적 완화는 현재 7.6%에 달하는 실업률이 5∼6% 수준으로 내릴 때까지 계속될 전망이다. 

달러와 엔화가 지금처럼 계속 풀리다 보면 유동성 회수에 나서기 전까지는 결국 통화의 가치 하락은 피할 수가 없게 된다. 더구나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제조업 부문에서 줄어든 180만명 고용을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제조업의 경쟁력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대달러 환율의 인위적인 조작을 용인하지 않을 것이다.

이를 다시 원·엔 환율 예측을 위해 단계별로 살펴보자. 원·엔 환율이 정해지는 첫 번째 단계인 원·달러 환율은 일시적 요인이 해소되면 미국이 양적 완화를 종료하거나 종료가 예고되기 전까지는 하락할 가능성이 더 크다. 두 번째 단계인 엔·달러 환율은 이미 엔화 가치가 약 20% 정도 하락했다는 점에서 엔·달러 환율이 100 엔에서 적은 변동폭으로 움직이거나 최대 5% 정도의 하락폭(엔화 가치의 추가 하락이 5%)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정리하면 원·엔 환율이 결정되는 세 통화 간 흐름을 볼 때 5% 정도의 엔화 가치의 추가 하락을 예상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가 특정한 환율 수준에 집착해 손쉬운 구두 개입 등의 인위적인 조작에 나서면 곤란하다. 통화량이라는 펀더멘털과 동떨어진 환율 수준을 유지하려 한다면 오히려 어느 시점에는 통제할 수 없는 변동성만 가중시킬 뿐이다. 환율의 특정 수준과 방향에 집착해 스스로 변동성을 확대하다가 위기 상황에서 국가적으로 천문학적인 손실을 초래한 지난 정부 초기 환율 개입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다.

잘못된 시장개입 때문에 겪은 실패와 현재의 주변 환경을 고려할 때 앞으로 정부의 환율 관리 방향은 간단하다. 달러와 엔화의 통화량 증가, 경상수지 등에 따른 환율 변화는 시장에 맡기고 원화가 투기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하다. 외국 자본의 급격한 유출입으로 환율의 급변동을 막는 역할에 집중해야 한다. 현재 상황에서 정부는 너무 빠른 속도로 급격한 쏠림현상이 일어나지 않도록 환율의 변동성을 통제하는 것이 환율 관리의 기본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기업들이 엔저를 극복하는 방안은 무엇인가? 연구·개발(R&D)에 더 투자해 기술을 혁신하고, 생산성을 향상시켜 가격경쟁력을 높여야 하는 것은 원론적 얘기다. 환율에 관해 직접적으로 뭘 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원론적인 얘기 이외에는 다른 수단이 많지 않다. 

엔저가 시작된 6개월 전에는 아무 말 없던 은행·선물 회사들이 지금에 와서 기업들이 환헷지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자신들의 영업적인 이익을 먼저 고려한 것이다. 적어도 북핵 리스크 문제가 어떻게 흘러가는 지와 일본은행이 자국의 양적 완화 조치가 시장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지켜봐야 볼 2~3개월 동안 우리 기업들 역시 그 추이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

북핵 리스크가 절정을 향해 치달을 때 달러 가격이 정점에 이르고 미국의 양적 완화가 조기 종료될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있지만 일반 제조기업들이 이런 시나리오에 기초해 정교한 환율 거래를 하기는 쉽지 않다. 이미 엔화 가치가 꽤 떨어진 상황이고 추가 하락 폭이 5% 정도인 점을 고려할 때 급하게 외환 거래에 뛰어들기보다 외화의 결제시점과 수취시점을 최대한 가깝게 하면서 환율 변동에서 오는 위험을 최소화하는 환율 헷지의 기초작업에 집중하는 게 낫다.

엔고 파도 인내와 정공법으로 극복해야

그동안의 고환율 정책이 한국 경제에 좋기만 하고, 지금 불가피한 원화 강세가 한국경제에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한국 경제의 여러 가지 문제점을 고칠 수 있는 또 하나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 2008년 초 930원이던 원·달러 환율이, 이명박 정부 집권 후 고환율 정책을 실시하며 1100원대로 급등하면서 수입업체들의 경영 위기가 시작됐다. 

2008년 9월 리먼 사태가 터지면서 환율은 다시 1500원대까지 폭등했고 이는 곧 수입기업들과 키코(KIKO) 등의 외환거래를 했던 수출입 기업들의 줄도산 사태를 일으켰다. 가격 경쟁력과 품질이 높아진 대기업의 수출·영업이익은 크게 확대됐지만 대기업으로부터 원화 결제를 받는 납품업체들은 고환율의 혜택을 보지 못했다. 결국 물가 급등과 내수 침체, 경제 양극화, 수출산업의 고환율 의존도 심화 같은 문제를 가져왔다.

이런 상황에서 수출 경기가 심상치 않으니 일단 전기·전자·자동차 수출 기업이 어려워지지 않도록 계속 고환율만을 희망해야 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고환율 정책의 목적은 일단 수출 대기업을 살려 고용과 소비 증대를 통해 경제를 살리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고환율 정책의 가장 큰 수혜자인 전기·전자·자동차 산업의 임금 상승과 고용은 이미 한계점에 와 있다. 이미 현대자동차의 평균 연봉이 8900만원이고 전체 자동차 산업의 고용인구가 우리나라 전체 고용인구의 7.3%를 넘어선 상황에서 과연 앞으로 뭘 더 기대할 수 있을까.

그간 혜택을 입어온 쪽이 비축한 힘을 쏟고 양보할 차례라는 경제정의는 논외로 치더라도 고용과 소비의 증대를 위해 고환율의 피해를 입어온 철강·정유·항공 등의 산업에 혜택을 줘야 고용이 살아나고 임금 상승을 통한 소비의 증대를 이룰 수 있다. 고환율에 따른 물가 상승과 내수 침체로 어려움을 겪은 서민층과 자영업자를 살릴 수 있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

엔저의 속도와 강도가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크고, 엔저 대세의 방향을 되돌릴 실질적인 수단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미·일 통화의 약세가 주는 이점도 크다. 수입 기업이 입는 직접적인 혜택뿐만 아니라 수출 기업 또한 해외 생산기지를 건설할 기회가 될 수 있다.

미·일의 핵심 부품과 핵심 기술에 대한 비용 인하와 물가 인하에 따른 소비력 증가로 내수 시장이 확대될 수 있는 기회도 맞을 수 있다. 엔저로 어렵다고 울상 짓고 있을 필요는 없으며, 더구나 극복 못 할 문제는 더더욱 아니다. 엔저 파고는 충분히 넘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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